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미술

고대 그리스 미술

하마-- 2021. 11. 17. 20:12

고대 그리스 미술

 

기원전 580년 경 크레타 미케네의 미술은 그 후의 시대인 그리스 미술과 비교하여 미적 감각이나 미술상의 양식에 있어서 상당히 다른 것이며 크레타 미케네의 미술이 반드시 그리스 정신을 나타내는 것이라고 하기는 어렵기 때문이며 그리스 미술은 극히 조소적(彫塑的)이며 간소하고 또한 장중(莊重) 한 데 대하여 에게해 미술은 현저하게 회화적 공예적이어서 기념비적인 조각은 근소한 예외를 빼고 거의 존재하지 않는다.

 

기원전 10세기 말 그리스

기원전 10세기 말에 이르러 고대 그리스에서는 사람이나 동물을 기하학적 모형으로 표현하는 양식이 나타나 기원전 8세기까지 유행하였고 기원전 10세기부터 9세기에 걸쳐 성립된 그리스의 폴리스는 기원전 7세기부터 6세기에 걸쳐서 뚜렷한 발전을 하여 지중해 주변 지역에 식민지를 건설하기 시작하였고 이 시기 이집트나 오리엔트와의 접촉하면서 대리석 기념물을 제작하는 방식을 습득하여 고대 그리스 조각은 아르카이 크기(고졸기)에 진입하며 페르시아 전쟁의 승리로 지중해 세계의 패권을 장악한 아테네에서는 5세기 후반부터 이상미를 추구하는 고전기에 돌입하였고 알렉산드로스 대왕의 동방 원정으로 그리스 문화와 오리엔트 문화가 융합된 헬레니즘 시대에는 고전적인 감정은 격정 흥분에까지 높아지고 운동은 격동 동요에 이르렀으며 이러한 헬레니즘적 특성은 로마에까지 계승되었고 그리스 건축 영역의 대부분을 차지하는 것은 신전이며 또 그리스 건축의 구성의 아름다움과 특색이 특히 신전에 분명히 나타나 있고 처음에는 전체의 비례나 개개의 부분의 형식이 각각이었으나 기원전 6세기에 처음으로 엄격하고 때로는 수학적으로 정확한 건축 방식이 만들어졌다.

 

그리스 신전

그리스 신전의 가장 중요한 부분은 건축의 구조상으로 보아 기둥 및 그 위에 얹히는 수평 부재 즉 엔태블러처(entablature)이며 주범 양식(오더)은 각부의 비율이나 형태의 차이에 따라 도리아식 이오니아식 및 코린트식의 세 가지로 구별되고 에트루리아 이 부분의 본문은 에트루리아 미술이며 식탁의 묘에 그려진 벽화. 로마인보다 앞서 이탈리아 반도에 최초로 독자적인 문화를 남긴 에트투리아인은 기원전 8세기경부터 기원전 2세기까지 북쪽은 토스카나 지방부터 남쪽은 로마에 이르는 지중해 연안 지역을 중심으로 한 중부 이탈리아의 거의 전역을 지배한 민족이며 기원전 7세기경부터 이탈리아 남부의 그리스 식민도시를 통하여 그리스 문화와의 접촉이 빈번하게 되고 기원전 6세기 이래 강한 영향을 받았다.

 

분묘 예술

에트루리아인이 항아리에 그린 그림이나 분묘의 벽화의 주제가 그리스적 요소를 다분히 보이며 건축, 조각, 회화, 공예 등의 조형 분야에서는 에트루리아인이 독자적 예술을 발전시켰으며 그들의 분묘 예술은 그 가장 현저한 증거이며 에트루리아 건축을 가장 특징짓고 있는 것은 분묘이며 그 형식은 시대에 따라 상당히 다르며 정자형(井字型) 장방형 사각형 원형 등 각양각색이며 가장 오래된 유적(遺蹟)은 빌라노바 문화와의 혼성 기라고 하는 기원전 10세기부터 기원전 9세기경까지 거슬러 올라갈 수가 있고 그 형식은 우물형인데 가운데에 뼈항아리를 놓는 감실이 만들어져 있고 그 후 기원전 8세기에 와서 새로운 형식의 장방형 분묘가 만들어지고 다시 기원전 7세기 말 이후에는 궁륭 천장을 가진 순연한 분묘 건축이 나타났다. 에트루리아인은 여러 가지의 형태를 한 분묘를 만들고 거기에 많은 일용품을 부장함과 함께 분묘의 벽면을 아름답게 채색한 벽화로 장식했고 타르퀴니아의 분묘군에는 벽화가 가장 많이 보이는데 그중에서도 가장 오래된 벽화는 <황소의 묘(Tomb of the Bulls)>로서 기원전 6세기 중엽의 것이며 기원전 5세기가 되면 <남작의 묘(Tomb of the Baron)> <식탁의 묘(Tomb of the Triclinium)> 등에서는 색채가 부드러워져서 구도에 조화와 통일이 있는 엄격한 화풍이 나타났다.

Photo by Jens Peter Olesen on Unsplash

 

분묘 벽화 기법

<남작의 묘>의 기법은 일반적으로 쓰이고 있던 프레스코가 아닌 템페라를 사용하고 있었으며 인물 사이에 나란히 선 수목이나 작은 새들의 묘사는 사실적이며 이것들은 분명히 그리스 회화의 영향이지만 자연과 인물의 환경 묘사는 그리스 회화에서 볼 수 없는 에트루리아 회화의 특징이며 고대 로마 이 부분의 본문은 고대 로마 미술이며 제피로스와 클로리스의 결혼을 묘사한 프레스코 폼페이 클라우디우스의 두상 로마 미술은 북방의 에트루리아 미술과 반도 남부의 그리스 식민도시 미술의 영향을 받아서 싹이 트고 발전한 것이며 로마는 현실적행동적인 요소를 에트루리아인으로부터 받아 계승하면서 그리스적 형식을 모방했고 기원전 2세기 후반에 그리스를 정복한 이래 매우 많은 수의 그리스 조각이 로마로 운반되었고 다수의 그리스 예술가가 로마에 초빙되어 그리스 명작을 모방했고 청동의 원작은 대리석에 되새겼고 그것들은 로마인의 취미나 헬레니즘 시대의 자연주의적인 경향으로 약간 변경되어 갔다.

 

로마 미술의 특성

로마 미술의 특성은 건축에서 유감없이 발휘되고 있고 로마의 건축은 기둥과 들보로 되는 그리스 건축의 구성과 에트루리아의 성문이나 분묘에 쓰이고 있는 아치형을 채용하였고 구조면에 있어서는 아치형의 채용에 수반해서 벽돌이나 돌을 가루로 만든 일종의 시멘트가 건축 공업에 채용되어 거대한 건축의 건조를 가능하게 했고 아치형에서는 상부의 중력은 원 둘레의 각 부분에 균등하게 중합(重合) 하기 때문에 기둥의 수를 줄이고 내부를 넓힐 수 있고 조각에 있어서는 그리스의 영향이 특별히 현저하여 기원전 2세기 후반에 로마가 그리스를 정복한 이래 대부분의 그리스 조각이 로마로 운반되고 또한 파시 텔레스를 비롯하여 다수의 그리스의 예술가를 로마로 불러들여서 고전의 명작을 모방시켰다. 초상 조각에는 로마 조각의 훌륭한 독창성이 보이는데 그것은 단순한 용모의 모방이 아니라 성격 묘사의 교묘한 점인 것이며 로마의 회화는 헬레니즘 회화의 수용에서부터 시작하며 헬레니즘 회화의 원작은 헬레니즘의 여러 지역에서는 거의 잔존하지 않는다. 그러나 기원후 79년에 일어난 베수 비 오산의 분화로 매몰된 폼페이와 헤르쿨라네움에 남아 있는 벽화를 통하여 헬레니즘 시대와 로마 시대의 회화를 알아낼 수가 있고 프레스코 및 모자이크에 의한 그들의 화풍은 헬레니즘 시대의 정신을 반영하고 감각적이며 신비적이고 산문적인 주제가 사실적 기법으로 그려져 있다.

 

 

참고문헌 : 우정아(2021). 서양미술사의 확장된 시간과 공간. 역사학회.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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