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표현과 연령
1632년 이때 이미 렘브란트는 초상화가로서 성공했고 표현이 작자의 경험이나 성격에 따라 개인차가 있다고 하는 것은 동시에 개인에게 있어서도 연령에 따라 그 표현이 달라진다고 하겠다. 표현과 개인의 연령과의 관계는 지극히 개인차가 많아서 한마디로 말할 수는 없으나 대체적인 경향으로서는 다음과 같이 말할 수 있고 노년기는 이른바 원숙한 시기로서 거기에서는 아무것에도 구애받지 않고 자기 자신의 취향을 제 마음대로 발휘하는 시대이며 개중에는 고령이 된 다음 더욱더 진가(眞價)를 발휘하는 사람도 있고 또는 매너리즘에 빠져 버리는 사람도 있고 렘브란트는 청년기에서 만년기에 걸쳐 약 백 점에 가까운 자화상을 그리고 있는데 청년기 장년기의 표현의 차이가 어떻게 나타나 있는지 알아보자.
렘브란트 자화상
1669년작은 사망한 해이지만 다른 자화상에 나타난 그의 모습보다 젊어보이며 렘브란트의 27세∼28세의 작품에서는 초상화가로서 호평을 받아 우쭐거리는 자세가 몸가짐에서 드러난다. 그러나 아직도 렘브란트의 특질을 충분하게는 발휘하고 있지 않다.
그의 57세∼58세 작품에서는 인생에 대한 체관(諦觀)이 지극히 사람이 좋은 그리고 보는 견지에 따라서는 대범한 웃음이 되어 나타나고 있고 그림물감이 두껍게 칠하여졌고 빛(光)과 빛깔이 완전히 융화되어 작품은 더욱더 심각성과 처절함을 덧붙이고 있고 표현과 연령 표현과 성장 모든 것이 성장하여 나아갈 때 거기에는 몇 개의 단계가 있다시피 당연히 그림을 그리는 힘의 발달에도 대체적인 순서와 단계가 있고 그것이 그림의 발달단계이며 이 발달단계 연구자에 따라서 다소의 차이가 있으나 일반적으로 로웬 페르 드(미국)의 연구를 기저(基底)로 한 다음의 6단 계설이 많이 쓰이고 있고 그러나 연대(年代)의 진전에 따라 발달의 진보도 빨라지는 경향이 있고 이것은 성의 있는 가정교육 미술연구소나 아름다운 복제화(複製畵)의 보급 텔레비전을 중심으로 하는 매스컴의 영향 등이 그 원인이라 생각되고 척서기(擲書期) 0세∼2세 반(무의미한 선을 그린다) 상징기(象徵期) 2세 반∼3세(그리고 난 다음 뜻을 붙인다) 전 도식기(前圖式期) 3세∼5세(비슷하게 그린다) 도식기(圖式期) 5세∼9세(소위 그림답게 그려진다) 사실 전기(寫實前期) 9세∼14세(형상이나 빛깔이 실물에 가깝게 그려진다) 사실기(査實期) 14세∼20세(이른바 사실적으로 표현한다) 이상과 같이 나눌 수가 있고 당연한 것이긴 하지만 어떤 단계에 넣어야 좋을지 확실치 않은 것도 있으며 또한 성격이나 능력의 차이 환경의 차이 등에 따라서 발달이 반드시 일정하지는 않다.
척서기
개중에는 표현이 후퇴하는 그런 어린이조차 나오게 되고 이러한 특례가 있으나 대체적인 발달의 자태는 역시 비슷한 단계를 밟아간다. 이처럼 어린이의 그림은 심신의 성장과 함께 자라가고 있는 것이기 때문에 어린이의 작품에는 어른의 작품에서 볼 수 있는 그러한 예술성은 없다고 생각하여야 되고 이 척서 기는 유아가 신경이나 근육 에너지의 과잉(過剩)을 자발적으로 소비하려고 하는 무의식 속에서 나온 팔의 반복 운동 결과라고도 할 수 있고 따라서 그림으로서는 아무 뜻을 갖지 않는다. 그러나 그림에 이르기까지의 중요한 과정이며 이 척서기에도 대체적인 발달 순서가 있고 우선 처음으로 크레용을 잡은 유아는 점을 찍는다. 종이를 두들기듯이 점을 찍는다.
손의 컨트롤
다음에 볼 수 있는 현상은 손목을 좌우로 흔들어서 그리는 횡선착화(橫線錯畵)이며 이윽고 종선 착화(縱線錯畵) 에로 발달하여 간다. 이것은 손의 컨트롤이 팔꿈치까지 함께 움직일 수 있도록 되었다는 것을 뜻하고 있고 팔의 활동이 숙달됨에 따라 선도 뚜렷해지고 마침내 원형 착화(圓形錯畵)로 발전하여 가는 것이 보통이며 그리고 그것이 파상(波狀)과 원형의 혼합으로 되어 더욱더 복잡하게 되어 간다. 상징기 2세 전후가 되면 그린 형상에 명명(命名)하는 어린이가 생겨난다.
그것이 상징기이며 어른이 보기엔 단순히 선을 긁적거린 것으로밖에는 생각되지 않는 것을 어린이는 <기찻길> <버스> <멍멍> 따위로 이름을 붙이고 우쭐거리며 자랑스럽게 떠들고 있고 이는 유아가 운동만으로 느끼고 있던 흥미에 시각적(視覺的)인 것이 곁들여져 그린 것을 의미화(意味化)하는 단계이며 단순한 운동적인 것에서 상상적인 것으로 발전했다는 증거이며 그렇기 때문에 이 시기는 척서기에 상상성(想像性)의 발달이 합쳐진 것이라 말할 수 있고 그렇지만 어른이 성급하게 이 시기 어린이의 표현에서 시각적인 의미를 강제로 끌어내려고 하거나 형상을 그리도록 강요하거나 하는 것은 잘못이며 어른은 곁에서 어린이가 그리면서 말을 들어주고 그 표현을 격려하여 주는 것이 중요하다.
전 도식기
그것을 한마디로 말하자면 이 시기의 그림은 성장의 기록이기 때문이며 전 도식기 이 시기의 표현은 설명 없이 대충 그것이로구나 하고 인정할 수 있는 그러한 그림을 그릴 수 있게 되고 요컨대 어린이의 주위에 있는 사람이나 초목 기물 등을 조금씩 지식으로서 파악하여 그것 비슷하게 그려서 표시하게 되고 표현은 물론 불확실하기는 하지만 그 대상의 특징을 그려 표시하는 데서 진보가 보이며 산 태양 그리고 사람도 일정한 도식(圖式)으로 표시하고 또는 부분을 그렸을 뿐인데 그 대상 전부를 표시하였다고 생각하고 있고 이로 말미암아 상징 기와 동일하게 생각되는 경향이 있으나 상징 기는 그려진 것이 무엇인지 거의 이해할 수 없는 데 반해서 전 도식기의 표현은 하여튼 무엇인지를 알 수 있고 그리는 방법으로서는 예를 들면 인간의 경우에 얼굴은 동그라미 눈은 점 발은 한 쌍의 선으로 표시하며 제재(題材)는 인물이 압도적으로 자기 자신과 어머니, 아버지, 동생 등의 순으로 많이 그려진다. 요컨대 일상생활에서 자기 자신과 관련성이 깊은 것일수록 자주 취급된다고 할 수 있겠다.
참고문헌 : 우정아(2021). 서양미술사의 확장된 시간과 공간. 역사학회.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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