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이탈리아 르네상스

르네상스 미술은 1400년 경 이탈리아에서 철학 문학 음악 과학 기술의 발전과 궤를 같이하여 두드러진 양식으로서 발생한 회화 조각 공예이다.

Photo by brooklyn on Unsplash

 

이탈리아 회화

알베르티 브루넬레스키가 건축에서 그리고 기베르티 도나텔로가 조각에서 이룬 새로운 방향으로의 전환이 회화에 있어서는 마사초에 의해 이루어졌다. 바사리의 열전(列傳)에 기술된 것처럼 그가 프레스코화를 그린 피렌체에 있는 카르멜회 산타 마리아 델 카르미네 교회는 많은 르네상스 화가들의 수업의 도장이 되었고 한편 북이탈리아의 파도바와 베로나는 계속하여 베네치아에게 정복당하여 신문화와 연결이 되지만 처음에는 오히려 위의 두 도시가 능동적이었고 총독 저택을 장식한 젠틸레 다 파브리아노의 뒤를 이어서 피사넬로는 국제 고딕 양식을 베네치아에 가지고 가서 우아한 성모자(聖母子) 공상적인 의상 우화 동물 등 장식 문양적인 표현이 북이탈리아에 퍼졌다. 그러나 마솔리노와 같은 화가가 베네치아에 체재하여 신경향의 양식도 전했던 것이며 필리포 리피 우첼로 카스타뇨 등 피렌체의 화가들은 북이탈리아에서 한때 활동을 하였으며 특히 조토가 스크로베니 경당에 프레스코화를 그렸고(1306) 도나텔로가 그곳에 10년간(1443∼53) 체재하여 산토의 주제단(主祭壇)과 ⟪가타 멜 라타 장군 기마상⟫을 제작한 일은 마사초에 이어서 초기 르네상스의 중요한 화가인 만테냐에게 적잖은 자극이 되었다.

 

레오나르도 다빈치 《비트루비우스적 인간》

피렌체 파는 14세기로부터 16세기에 걸쳐 이탈리아의 피렌체를 중심으로 하여 르네상스 미술의 주류를 이루었다. 특히 회화에서는 주지적 합리주의(主知的合理主義) 조형적 형태주의(造形的形態主義)가 그 특징이며 주제에 관련이 있는 것만을 단순화하고 또 이를 극적으로 묘사함으로써 공간 구성은 화면 안의 통일이다라는 고딕과는 다른 형식의 회화를 만들어냈다. 이 전통은 장식적인 시에나 파와 대립하여 14세기 이탈리아 회화의 2대 조류를 이루었다. 한때 시에나 파의 영향을 받아 장식적인 것이 되었으나 마사초 브루넬레스키 등의 투시 도적 수법과 도나텔로의 조형적 성과를 도입한 다음부터는 회화적 현실의 표현에 신천지를 개척하였고 피렌체 파의 사실적 성과는 메디치가의 번영에 힘입어 르네상스 회화 발전의 주류가 되었고 이 자연주의는 1400년대 예술의 주류가 되었으며 자연과학의 발흥과 더불어 인체 묘사 운동 묘사 풍경 묘사 등에서 새로운 국면이 열리게 되었고 1500년대에는 이상주의적 경향이 강해지는데 보티첼리는 만년에 이르러 이러한 경향을 보여주었으며 레오나르도 다빈치도 사실주의를 완성하면서부터 주관적 정신 내용을 그 속에 표현하였고 미켈란젤로는 강인한 인체 표현 속에 인간의 정신적 고뇌를 표현하였는데 그 초월적 방향으로써 피렌체 파의 최종적 단계를 장식하였고 바로크 양식의 선구자가 되었다.

 

티치아노 《우르비노의 비너스》 1538

조르조네는 조반니 벨리니 이래 색채를 구사하여 특이한 화풍을 세운 베네치아파를 한층 더 발전시켰다. 요절한 그에 관하여는 알려진 게 거의 없다. 수수께끼에 싸인 《태풍》(1505?)은 폐허가 된 어느 조용한 촌락을 배경으로 하여 바른쪽 잔디 위에서 젖을 물린 나체의 부인이 앉아 있고 왼쪽 끝에 젊은 병사가 서 있고 때마침 구름은 낮게 깔려 있으며 번개마저 번쩍인다. 이것은 플리니우스가 말한 것처럼 페아레스(그리스의 화가)는 어느 누구든 그릴 수 없는 것 즉 태풍을 그렸다고 하는 고대의 기록에 대한 도전이라 여겨진다. 그의 《잠자는 비너스》는 밝은 광채 아래 풍만한 미를 드러내어 놓고 그리스의 조각가도 미치지 못하는 관능미를 현실화하고 있고 베네치아파 최고의 화가라고 칭송받는 티치아노는 처음엔 젠틸레 이어서 조반니 벨리니의 제자가 되어 동문인 조르조네의 영향을 크게 받았다. 세바스티아노가 로마로 떠나고 스승인 조반니가 죽은 뒤에 그는 베네치아 화단을 지배하게 되었고 《우르비노의 비너스》(1538?)는 조르조네의 평온한 정원의 정서를 베네치아 시민의 실내로 바꾸어 한층 더 화려한 색채의 음악적 표현을 더하고 있고 프레스코화에 맞지 않는 항구인 베네치아에서는 비잔티움의 광채 육리(光彩陸離)한 모자이크가 애호되었는데 이 시대에는 북방에서 전래한 유채 화법이 베네치아에서 채용되어 회화사상 일대 전기를 가져오게 하였다. 1520년 라파엘로가 전년에 죽은 레오나르도의 뒤를 따라 타계함으로써 드디어 성기 르네상스라고 하는 짧은 황금시대는 종막을 고하며 피렌체의 여광(餘光)은 프라 바르톨로메오와 안드레아 델 사르토가 계승했고 전자의 대표작 《피에타》(1510?)는 정적의 땅거미 속에 연출되는 애수(哀愁)의 무언극이며 경건한 도메니코회 수도 화가의 기원이 스며 있고 후자는 《하르파 에스의 성모》(1517)와 《세례자 요한》(1515?) 등의 전아(典雅)하고 우미한 종교화를 제작하여 색채화가로서 알려졌다.

 

 

참고문헌 : 조은정(2017). 한국에서 서양미술사 개론서 쓰기. 한국예술연구소.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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