티스토리 뷰
프랑스 르네상스
프랑스 르네상스는 15세기 말부터 17세기 초까지 프랑스에서 일어난 문화・예술 운동이며 르네상스는 근세 이탈리아에서 시작된 이후로 타 유럽 국가에 전파되며 프랑스에서도 나타났다. 이탈리아 르네상스와 마찬가지로 프랑스 르네상스의 특징으로는 삶에 대한 갈구 인간에 대한 믿음 지식에 대한 갈망 자유의지의 정신 등이 있고 프랑스 르세상 스는 중세의 사고방식에 의문을 제기하며 새로운 형태의 삶과 문명을 추구했고 더불어 인쇄술을 통한 정보의 전파 가능성과 대서양 저편의 신세계 발견은 당대 인간의 세계관을 깊이 변화시켰다. 프랑스 르네상스는 프랑수아 1세와 앙리 2세로 상징되는 왕들에게 고용된 화가와 조각가의 시대였으며 이 시기는 클로 뤼세에서 생을 끝마친 레오나르도 다 빈치의 시대이기도 하다만 퐁텐블로 파가 창설되고 16세기 메디치 가문이 파리에 도착한 시대이기도 하다. 프랑스 르네상스는 네 시기로 나뉜다.
첫 번째 시기는 루이 12세 양식(약 1495-1530)으로 고딕 양식과 르네상스의 전환기를 형성하며 하나 이 첫 번째 양식은 1515년경 특히 이탈리아 르네상스의 도입이 매우 빨랐던 루아르 계곡에서부터 쇠퇴하기 시작하며 이탈리아에서처럼 프랑스 르네상스 제1기 이후의 제2기와 그 둘을 종결 낸 매너리즘이라는 세 시기는 17세기 초까지의 시기를 삼분(三分)하였다.
독일 르네상스
독일에서는 이탈리아와 가까운 바이에른에서 시작이 되었고 독일 르네상스는 르네상스적 요소와 후기 고딕적요소가 결합되어 있다는 것이 특징이며 그 이유는 다른 지역보다 독일에 르네상스적 요소가 늦게 도달했기 때문이며 아담과 하와 4명의 사도 등의 미술 작품을 완성한 알브레히트 뒤러가 선두이며 알브레히트 뒤러 외에도 많은 독일 르네상스 화가들이 있다. 세기별로 대표적인 독일 르네상스 작가들은 다음과 같다.
15세기
슈테판 로흐너 <최후의 심판> <성전봉헌> <장미정원의 성모마리아>
미하엘 파허 <성 볼프강 제단화> <그리스도의 탄생> <교부들의 제단화>
16세기
마티아스 그뤼네발트 <이젠하임 제단화> 루카스 크라나흐 <마르틴 루터 부부의 초상> <샘가에 누워있는 강의 요정> <아담과 이브> <파리스의 심판> 한스 발둥 그린 <십자가에 못 박힌 예수> <프라이 부르크 제단화> <인생의 세 단계와 죽음> 한스 홀바인 <헨리 8세 초상화> <대사들>
또한 지식인들이 라틴어 성서를 연구함으로써 종교개혁의 바탕이 만들어졌다.
폴란드 르네상스
폴란드에서는 15세기와 16세기 사이에 이탈리아의 화가 상인 사상가들이 폴란드에 들어오면서 크라쿠프를 중심으로 발달하였고 지동설을 주장한 니콜라우스 코페르니쿠스와 얀 코하노프스키 같은 시인들이 등장했고 르네상스 양식으로 지어진 중요한 기념물은 다른 많은 도시에서도 볼 수 있다 (예 포즈난 그단스크 헤움노). 슈체친의 슬라브 왕자의 중세 성은 제2차 세계 대전 이후 르네상스 양식으로 재건되었다.
스페인 르네상스
스페인에서는 이데올로기의 변화가 다른나라와 같이 극심하지 않았지만 다른 유럽에 비해 중세의 문화가 혁파되지 않았고 문학에서는 이탈리아의 혁신을 받아들였지만 서정시집과 이전의 전통을 잊지는 않고 제3의 것을 창조했다고 할 수 있고 르네상스와 바로크 전기의 집대성으로서 대표적으로 미겔 데 세르반테스가 있고 가르실라소 데 라 베가는 가장 대표적인 스페인 르네상스 시인이자 작가로 스페인에 이탈리아로부터 처음으로 르네상스 시를 도입한 사람이며 조형예술에서는 이탈리아의 기본적인 요소들을 현지 전통과 잘 융화하였고 르네상스의 혁신은 스페인에 매우 늦게 전달되었는데 거의 스페인 예술에서의 르네상스는 고딕풍에서 매너리즘으로 급격하게 변화하는 양상을 보이고 있다.
건축은 다음과 같이 16세기 금은 세공사에 의해 사용된 장식을 활용한 건축양식 플라테레스코(15세기에서-16세기의 1분기) 순수(정통) 주의 및 이탈리아풍 (16세기 전반기) 에레리 아니; 엘에스 꼬리 알의 건축가 후안 데 에레라에서 연유한 건축용어(1559년부터 다음 세기 중반) 크게 세 시대로 분류가 가능하다. 이중 첫 번째는 표면적인 형태에서 드러나는데 전반적인 고딕 양식을 유지하면서 파사드의 화려한 장식을 하는 것으로 드러난다. 이 장식은 세밀하고 풍부한 모습을 지니고 있는데 살라망카 대학 건물의 파사드의 장식이 대표적인 예라고 할 수 있다.
순수(정통)주의는 이탈리아의 가장 후반기의 측면을 반영하고 있는데 알람브라의 카를로스 5세 궁전이 대표적인 예이며 이 스타일의 중심지는 안달루시아 지방으로서 우베다와 바에 사의 안드레스 데 발데 비에라 디에고 데 실로에 등이 두각을 나타냈다. 마지막으로 에레리 아니 양식은 길게 늘이는 특성을 지닌 매너리즘에 대한 수용에서 비롯되었으며 후안 데 에레라가 엘에스 꼬리 알에 건축한 수도원이 명실공히 스페인 르네상스의 야심작이라 칭할만하다. 조각에서는 고딕 양식의 전통 헤게모니가 16세기에 이르기까지 유지되고 새로운 스타일의 첫 번째 흔적으로서는 펠리페 비가르니와 도메니코 판 셀리의 작품을 들 수 있고 보다 성숙한 단계에 이르러서는 커다란 외형을 가진 스타일이 발생되었고 이러한 독특한 매너리즘은 이후 바로크 조각의 기초가 되었고 회화에서의 스페인의 르네상스는 고딕 양식의 유산을 유지하는 동시에 이탈리아로부터의 새로운 방식이 공존하는데 이러한 분열은 페드로 베루 구에 테가 우르비노에서 작업한 작품에서 잘 드러난다. 그러나 스페인 르네상스를 가장 크게 특징짓는 것은 매너리즘으로 명명된 엘 그레코로 대표되는 고유의 양식이다.
네덜란드 르네상스
오늘날에 벨기에와 합쳐있던 네덜란드는 남유럽과 북유럽을 잇는 교통의 관로였으며 거의 이탈리아와 같은 시기에 르네상스가 일어난 걸로 알려졌다. <우신예찬>을 쓴 에라스무스와 같은 작가가 등장했고 판 에이크 형제와 피터르 브뤼헐 더 아우 더 히에로니무스 보쉬 같은 화가들이 등장하였다.
르네상스의 종말
130년간 지속되던 르네상스는 1530년경 끝이 났다. 그 이유는 우선 1492년 크리스토발 코론이 포르투갈인들과 함께 인도로 가는 해로를 발견했기 때문이며(사실은 아메리카로 가는 해로였으며) 그 후에는 북서부 유럽의 상인들이 무역상품을 리스본과 안트웨르펜을 통해 거래하는 것을 선호하게 되었고 또한 1517년 아우구스티노 회의 수도사인 마르틴 루터가 종교 개혁을 단행했기 때문이며 이로 인해 서유럽 교회는 로마 가톨릭 교회와 개신교 교회로 분열되었다. 교회의 분열은 그동안 납부금과 세금의 형태로 이탈리아를 풍요롭게 했던 돈줄의 고갈을 의미했고 유럽인의 아메리카 대륙 상륙과 종교개혁으로 결국 이탈리아는 상업적 무역 자본과 자본 두 가지를 동시에 잃었다. 또 이탈리아는 그 당시 이탈리아 전쟁 등이 겹치며 정치적으로 굉장히 혼란스러운 상태이기도 하였고 이로 인해 르네상스는 쇠퇴할 수밖에 없었다.
참고문헌 : 조은정(2017). 한국에서 서양미술사 개론서 쓰기. 한국예술연구소.
'미술' 카테고리의 다른 글
예술가 루카 시뇨렐리, 안토니오 다 코레조 (0) | 2021.11.22 |
---|---|
르네상스 시대의 화가 - 마사초, 보티첼리, 조르조네 (0) | 2021.11.22 |
르네상스의 역사와 이탈리아 르네상스의 시작 (0) | 2021.11.22 |
프랑스의 르네상스 (0) | 2021.11.21 |
르네상스 시대의 조각, 공예, 건축 (0) | 2021.11.21 |